소망교구 박정화 지역장

 
저는 비록 시골에 살았지만 부요했던 대가족의 늦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막내로 집안에서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하며 행복한 날을 보냈지만 그것이 딱 열 살까지였으니 마치 한여름 밤의 꿈만 같습니다. 아버지는 독단적인 욕심으로 산도 팔고 논밭도 팔아 궁궐 같던 집을 뒤로하고 온가족을 낯선 곳으로 끌고 갔습니다. 우리가족이 도착한 곳은 당시 나라에서 개척한 간척지였습니다. 그렇게 파도에 휩쓸리듯 우리가족의 운명은 급격히 쓸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사 가는 날, 정갈한 한복을 입으신 채 “나를 죽이고 가라”고 하시며 온 힘으로 큰 대추나무를 끌어안고 버티셨던 할아버지께서는 결국 이사 간 곳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실패로 가산이 풍비박산나자 어머니에게는 화병, 신장병, 심장병에 또 합병증으로 중풍까지 찾아 왔습니다. 어머니는 6년간 병원에 살다시피 하셨는데 예수님 믿으면 병을 치료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어쩌다 집에 오시면 바위 산 위에 있는 교회에 가기 위해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산을 오르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이면서 사춘기였던 그때, 가장 어머니가 필요했던 제 나이 열여섯 살, 어머니는 결국 천국으로 떠나셨고 제 인생은 또 다시 제 의사와 상관없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타지에서 모든 것을 잃은 채 부끄러운 귀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고향에서 손위 형제들은 서울로 유학 가 있었고, 권위적이고 고지식한 아버지는 제게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사랑이 많고 온화하셨던 어머니가 사무치게 보고 싶어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자살을 시도했고 다행히 약을 먹은 후 오래지 않아 발견돼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공허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저를 평소에 지켜보던 믿음이 좋은 친구가 전도했지만 그때까지 예수님이 누구인지,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한 채 교회 문턱만 넘나들 뿐이었습니다.

무엇에든 재주가 있고 ‘똑순이’라고 칭찬받던 어린 시절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순간 땅에 묻혀버렸습니다. 열정도 꿈도 없는 세월 속에서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었던 저는 현모양처로 살고 싶은 자그마한 소망으로 결혼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전에는 꿈에도 몰랐던 남편의 경마, 경륜, 도박장을 밥 먹듯이 다니는 도박습관으로 인해 가정은 시작부터 지옥 같았습니다. 남편은 심지어 만삭인 제 배를 걷어차며 도박자금을 요구하였고 결국은 차 팔고 집도 팔아 이사를 하는데 부동산에서 잔금을 치르던 돈 일부까지 챙겨 도박장에 가는 것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제 막 아장아장 걷는 둘째와 유치원생이던 첫째를 놀이터에 남겨둔 채 남편이 도박장으로 떠나는 순간 가정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남편은 그 이후로 연락을 두절하다시피 했고 법정에 나타나지도 않으면서 끝내 이혼을 해 주지 않아 국선변호사를 통해 이혼 판결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전남편에게 받은 것 하나 없이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는 극심한 생활고에 죽지 못해 살던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창생이 다가와 선심을 쓰듯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그 덕에 잠시 생활이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경제개념 없이 무지했던 저는 그것이 인생의 더 큰 족쇄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친구가 사채업자였던 것입니다. 높은 이자를 받아 가면서도 영수증을 주지 않았지만 친구가 직접 받아 가니 의심하지 않았는데, 몇 년 후 돈 받은 적 없다며 폭력배를 데리고 나타났을 때 이미 사채의 늪에 빠져 있는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빚으로 빚을 갚는 일은 뉴스에서나 보았던 것이기에 수치심이 들어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에서도 월급을 몇 달 째 못 받다 보니 칠흑 같은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러지 말아야했지만 당시에는 ‘내가 죽어야 끝이 난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습니다.

저는 서울 어느 전철역에 서 있었고 그날은 마음을 먹었습니다. 지하철역에는 사람이 치일만큼 많았지만, 제 머릿속엔 오로지 ‘전철이 들어올 때 어떻게 때맞춰 뛰어들까’ 하고 철로를 노려보며 기회를 엿볼 뿐이었습니다. 전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어오자 행동을 하려고 마음을 다시 가다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전철 소리보다 더 큰 천둥소리 같은, 그러나 너무나 부드럽고 따스하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단호한 소리가 저를 불러 세웠습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이전에 신앙도 없었고 관심조차 없었던 하나님! 하지만 그 순간 하나님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수많은 인파 속에서, 저는 하염없이 울며 서 있었습니다. 부끄러움도 창피한 것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부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2부에 계속)

박스내용 : 괴롭고 외로운 날들 가운데 도박에 중독된 남편을 만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친구에게 사기까지 당해 칠흑 같은 절망에 빠져 목숨을 버리려 했던 저를 하나님께서는 사랑한다 말씀하시며 불러 주셨습니다.